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[조선일보] 뇌기능표시지도그리기

작성자
admin
작성일
2015-06-10 11:08
조회
769
[사이언스]뇌의 각 부분 기능 표시한 ‘지도’ 그리기 한창 30분이면 우울증·치매·종양 진단 가능
발행일 : 2004.03.23 / 특집 A20 면 기고자 : 백승재


불안하고 머리가 어지러운 환자가 걱정 끝에 병원을 찾는다. 약 30분의 검사 뒤, 각종 질병을 가지고 있을 확률이 진단된다. 정신분열증 0.7%, 우울증 5.4%, 불안장애 31.4%, 뇌종양 0%. 그동안 환자가 뇌를 어떻게 사용해 왔는지도 진단서에 나타난다. ‘내부 감정이 신경회로의 작동을 방해 중. 정보를 처리해서 결과로 도출하는 시간이 평균 이상. ’

‘뇌 지도’가 완성되면 가까운 장래에 다가올 모습이다. 최근 뇌를 연구하는 과학자들은 뇌의 영역마다 기능과 관련 정보를 표시, 하나의 지도(地圖·map)로 그려내고 있다. 우리의 생각과 기억이 결정되는 경로를 손에 쥘 수 있는 그림으로 만드는 작업이다.

뇌 지도가 왜 필요한지는 우리가 쓰는 지도의 역할을 생각하면 알기 쉽다. 지도는 단순히 지형을 나타낼 뿐 아니라 강수량, 기온, 인구밀도, 범죄율 등 무수히 많은 정보를 표시할 수 있다. 마찬가지로 ‘뇌 지도’는 기존의 연구성과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할 수 있을 뿐 아니라 과학자 간 연구결과 교환에도 큰 도움이 된다.

인간의 뇌가 영역마다 다른 기능을 갖고 있다는 생각은 19세기부터 있었다. 1905년 러·일전쟁에서는 역사상 최초로 뇌를 관통할 수 있는 라이플이 사용돼, 후두엽에 손상을 입은 환자들이 시각에 장애가 오는 현상이 관찰되기도 했다. 1950년대에는 초보적인 뇌 지도가 그려지기도 했다.

그러나 본격적으로 뇌에 지도를 그릴 수 있게 된 것은 CT(computed tomography·컴퓨터단층촬영), PET(positron emission tomography·양전자방출단층촬영), MRI(magnetic resonance imaging·자기공명영상) 등이 개발된 뒤이다. 지리학자들이 측량과 정밀한 항공사진으로 지도를 만들듯이, 뇌과학자들은 CT·PET· MRI를 사용해 뇌 지도를 만든다.

이들은 70년대부터 뇌 내부의 피질이 어떻게 상호작용하는지를 연구하기 시작해 인지신경과학(cognitive neuroscience)이라는 새 학문을 열었다. 인지신경과학자들이 성과를 올린 대표적인 분야가 시각 연구이다.

90년대 연구자들은 PET와 MRI를 통해 멈춘 물건과 움직이는 물건을 봤을 때의 뇌 혈류량을 찍어냈다. 결과는 놀랍게도 동일했다. 모든 실험 대상자들은 움직이는 물건을 본 뒤 하부 뒤쪽 뇌 피질이 활성화됐다.

최근 연구자들은 이 정보를 바탕으로, 더욱 자세한 뇌 지도를 그려냈다. 이들은 망막에 투사된 시각정보가 시신경을 통해 대부분이 일차 시각 피질(V1)로 전달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.

또 피질에 전달된 시각 정보가 V1과 연결된 많은 다른 피질(V2·V3A·V4·MT)로 분산되고, 시각적 주의력(attention), 작동기억(working memory), 운동 계획(motor planning)을 담당하는 회로를 형성한다는 결과까지 추가로 뇌 지도에 ‘그려넣었다’.

우리가 어떻게 물건을 볼 수 있는지 기본적인 회로가 밝혀진 셈이다. 과학자들은 이 지도를 더욱 자세히 그려, 최근 시각을 실제로 인식하는 회로가 어디인지를 밝혀내는 작업에 매달리고 있다.

뇌 지도 작성 작업은 우리가 알고 있던 상식을 부정하기도 한다. 예를 들면 소뇌는 운동이나 자세 조절 역할을 맡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, 최근 연구자들은 여러 가지 사물을 인식하는 기능도 소뇌에 있음을 밝혀내고 있다. 이 같은 연구가 계속되면, 철학이나 종교의 영역에 있던 인간의 인식·의식의 문제도 과학적으로 접근할 수 있게 될 것이다.

뇌 지도 연구 성과는 매년 기하 급수적으로 증가하며, 뇌 연구자 간에 정보를 통합할 필요성도 절실해지고 있다. ICBM(International Consortium for Brain Mapping)이 대표적인 사례.

ICBM은 미국·일본·유럽 선진국의 대표적인 뇌영상 센터들이 모여 18세에서 90세 사이 정상 성인집단의 인간 뇌 지도를 작성하고자 하는 대규모 프로젝트로, 1992년부터 7000여명에 대한 자료를 모으고 있다.

국내에서도 서울대 정신과학교실, 핵의학교실, 한양대 의공학교실 등이 모여 ‘한국인의 표준 뇌 지도’를 작성 중이다. 한국인의 뇌 지도가 필요한 이유는 뇌의 구조와 기능의 변이가 인종에 따라 큰 차이를 보이기 때문. 현재 일부가 작성돼 있으며, 5월 중순쯤이면 작성된 지도가 발표될 예정이다.

뇌 지도가 완성되고 이를 바탕으로 각 질병과 연관있는 뇌의 영역이 밝혀지면, 영상만으로 뇌질환을 세세하게 진단할 수 있다. 자신이 어떤 심리적인 상태가 있는지도 뇌 영상을 보면 파악 가능하다.

예를 들어 의사는 환자에게 ‘정신분열증입니다’라고 진단하는 대신, ‘유전적으로 내측두엽 해마 세포의 발달이 취약해 곧 정신분열 증상이 나타날 수 있습니다’라고 진단할 수 있다. 또 정신질환, 노인성 치매 등의 질환을 진단하는 것도 보다 간단해질 전망이다.

백승재기자 whitesj@chosun.com
※이 기사는 권준수 서울대학교 의과대 의학과 정신과학교실 부교수와 한국뇌학회의 도움으로 작성되었습니다.